연어는 강을 거슬러 태어나 곳으로 간다.
내가 태어난 곳의 기억은 사실 없다. 하지만 기억의 저편 한자리에서 들리는 소리가 있다.
막연한 그리움의 소리.
내가 나고 자라고 기억을 하기시작하기 부터 만들어진 방에서 들리는 소리......
기억의 소리는 지금 삶의 원천이다.
대구에 갔다. 4일의 휴가를 받으면서 맨먼저 떠오른 것은 대구를 가야겠다였다.
마침 엄마가 김장을 한다며 반기신다..
기다림이 있는 곳 또한 내가 자란 곳이다.
아버지가 대봉동 집을 팔고 동구 신서동으로 주거를 옮기신지 올해로 10년이다.
친구의 차를 타고 대봉동을 갔다...
내 기억의 편린들을 찾아 들려오는 소리대로 걸어보자.
* 고가구를 많이 팔고 표구가게가 많던 곳이 고미술 거리로 지정되어 있었다.
* 대성교회. 붉은 벽돌의 교회는 옛그대로 이다. 세월이 지나도 예쁜 시골교회같은 느낌이다.
대성교회는 투표서였다. 선거철이 되면 항상 이곳에서 투표를 했다.
내게 투표권이 주어지고 투표를 처음한 곳도 이곳 대성교회이다.
* 건들바위. 이렇게 공원으로 조성되기 전에는 꼬불꼬불 계단을 내려가면 두명도 지나가기 힘든
꼬불길 담벼락 넘어 있던 바위이다. 미로같던 그길... 그리고 가끔씩 귀신이 나온다고 했던 길이기도 하다.
항상 초들이 있었고~ 어떤날에는 새벽부터 굿하는 소리가 들리던 곳이다.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빌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이기도 하다.
* 대봉한의원.. 우리집이 애용하던 한의원이다. 아들이 이어간다고 들었다. 아버지가 쓰러지실때에도 병원에 가지 않아 대봉한의원 아저씨가 엄마의 부탁으로 우리집에 왔었었다. 침을 놔드리고 뇌졸증이니 얼른 병원에 가서 약물 치료 받아야 한다고 하셨지만 아버지는 오빠가 오기전까지 꼼짝을 하지 않으셨다.
* 도로에 도시철도3호선이 건설되고 있었다. 의정부 경전철과 비슷하다. ^^ 도시 미관은 이것으로 인해 망했다~
* 여기서 부터 집을 올라가 보자~
* 안나 미용실! 내가 처음 스트레이트파마를 한 곳, 코팅파마로 보라색 머리를 한곳이다.
지금도 영업중이다. 엄마는 파마하러 지금도 이곳에 간다고 한다. 이곳은 이제 동네 아줌마, 할머니들의
아지트가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인지 미용실 안이 시끌벅적하다. 엄마말에 의하면 아직도 안나미용실 아줌 마는 불에 달구어서 쓰는 고데기를 쓰신다고 한다.
* 우리집 전용 목욕탕. 5학년때 엄마가 목욕을 혼자가라고 했을때 겁이 났다. 그래서 용돈을 모아 7공주집 딸래미 한명을 꼬셔서 같이 갔던 기억이 있다. 자동 등밀이 기계가 있던 목욕탕이다.
나의 내복은 항상 오빠가 입던 회색 내복을 물려받았다. 소변보는 구멍을 꿰매서 엄마가 입으라고 줬다.
목욕탕가면 그 내복을 누가 볼까봐 바지와 같이 벗고, 입을때는 입지않고 담아와서 집에 와서 입었다.
지금은 흔한 내복, 실내복이라고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 내내 나는 빨간 내복 입어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 내가 피아노를 치던 피아노 학원과 두원이 집은 빌라가 되어버렸다.
* 서울상회는 디자인 사무실이 되어 있었다. 서울상회의 아저씨는 서울 사람이었다. 새우강 100원 하던 시절 서울상회는 90원 이었다. 참으로 풀방구리 처럼 들락날락 했던 수퍼다.
* 건들바위 내려가는 계단~
* 건들바위 내려가는 곳의 맞은편은 그대다. 이렇게 세월을 머금은 담벼락에 눈길이 간다.
* 서울상회, 두원이 집에서 맞은편 골목, 우리집 올라가는길... 변한것이 없다. 이 골목으로 쓰레기도 버리고, 목욕도 가고, 서울상회도 가고, 두원이 집 심부름도 가고~
* 우리집...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 대구시 중구 대봉2동 560-365번지...
대문 사이로 들여다본 마당에 풀이 무성하다... 엄마는 마당을 참 청결히 관리했다. 항상 끈을 달아 밖에서
잡아당기면 열리게 내가 개발하여 해놓고 다녔다. 번호키가 없던 시절 몇번이나 잡아당기고 열고 하여 성공하였다. 문이 열릴까 싶어 여기저기 살피는데 열리지 않는다.
* 아버지 문패가 걸려있던 자리는 신도로명 조수 안내판이 붙어 있다.
* 은영이 집은 공영 주차장이 되어 있었다. 세월이 무상하다.. 그리고 이곳은 판자집도 있었다. 집을 짓지 않고 나무로만 얼기설기 지어 사신 할아버지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 이 전봇대만이 옛날 모습 그대로 있다.
* 옛날에 국수공장이던 집... 항상 긴 국수발을 길가에서 말렸다. 등하교길에 땅에 떨어진 국수가락을 집어 먹는 재미가 솔솔 했었다.
* 국수집 맞은 편 이담벼락은 변함이 없다.
* 하대호 약국자리.... 하대호 약국도 우리집 전용 약국이다. 성이 같아서 아저씨가 잘 해 주었다.
* 등교길 대순이를 자주 만났던 골목길.... 이 골목으로 긴 바바리 코트를 입고 주근개 가득한 웃는 얼굴의 대순이를 등교길에 만났었다. 만나면 요즘말로 쌩깐다~ 모른척하고 각자의 길로~ 등교!
* 이담벼락도 변함이 없다. 향나무가 있던 숲속의 집은 지금은 음식점이 되어, 그대로 있었다.
* 아버지가 자주가시던 다방..그때도 향다방이었나? 권투경기가 있는 날이면 아버지는 이곳 아니면, ECA 외국어학원 원장실에 계셨다.
* 대구향교다... 3학년때 부터 아버지가 이곳 향교 방학프로그램에 나만 꼭 보내셨다.
덕분에 학이시습지면 불역낙호아와 천자문을 거칠 황까지 외운다. ^^
향교속 비문에서 숨바꼭질을 많이 했었다. 그러다가 관리아저씨에게 혼났다. 지금은 전통혼례식장이다.
* 이 표지석은 변함없이 그대로이다~
* 이모퉁이를 지나 길을 건너면 대구초등학교 등교길 절반을 왔다.
* 향교앞 자생의원, 산부인과였다. 내가 처음 부인과 진료를 받은곳~ 이기도 하다. 그때는 제일 세련된 건물이었는데...... 지금은 세월의 무게로 초라해졌다.
* 제일여중의 높은 담벼락~
* 학교가는 길의 인쇄소 골목들... 그때도 인쇄하는 곳이 많았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다. 서울로 치면 충무로?
그리고 무용학원이 있었다. 무용하는 아이들이 신기해서 들여다 보기도 했던곳이다.
* 드뎌 초등학교에 왔다. 청룡백룡의 집인 노란 혹불도 없어지고 , 이순신 장군 동산위치도 바뀌어지고, 연못도 없다......... 그래도 내가 74회로 졸업한 대구국민학교다.
* 반월당으로 나와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탔다.. 반월당 지하철역 지하상가는 별천지였다~ ^^
'하보영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노원친구들~ (0) | 2013.12.29 |
|---|---|
| 2013년 12월 7일~12월 10일 대구로 휴가를 가다. (0) | 2013.12.16 |
| 앞산의 추억! (0) | 2013.12.10 |
| 2013년 11월 23일 김장에 대한 보고서 (0) | 2013.11.23 |
| 영화배우~ ^^ (0) | 2013.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