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의 ‘낙화’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을 읽으면서 이 구절이 생각났다. 생의 마감을 아름답게 준비할 수 있는 것...
살아가는 동안 삶이 겨운 사람들은 세상에 대한 미련으로, 젊게 떠나는 인생들은자신의 존재가 없어짐에도 변함없이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절망으로 자신에게 오는 죽음이 두려워진다.
작년에 93세의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늚음으로 인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살아지는 생과 의지를 따르지 않는 육신. 주위에서는 “호상” 이라고들 했다.
온전한 자아를 놓고 보면 “호상”이라는 것은 죽음을 미리 준비한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것 같다.
“그만큼 사셨으니 이제 가셔도 됩니다.”라는 삶에 대한 시간적인 의미를 두고 본다면 장수한 사람들은 한 생을 잘 마감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모리 슈워츠의 생의 마감이 아름다운 것은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준비 할 수 있었던 것은 ‘순응’ 일 것이다.
인간의 생애주기에서 終은 빠질 수가 없다. 자연에서 동물들에게 나무들에게 해가뜨고 지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이치이며, 2006년 12월 31일에 뜨는 해와 2007년 1월 1일에 뜨는 해는 똑같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것일 뿐 별다른 의미가 부여 된지 않는다. 태어남과 자람과 죽음은 자연의 과정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시간을 이라는 것에 의미를 두고 달린다. 종착역이 죽음이지만 살아있는 동안에, 시간을 느끼면 사는 동안에 시간을 멈춤을 뜻하는 죽음에 순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모리가 병과 싸우는 몸으로 죽음이라는 시간을 받아 놓은 상황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적극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해가 지고 뜨는 자연에 순응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데사나 부족처럼 죽는 사람이 있어야 반드시 태어나는 사람이 있다면 죽음은 새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축복의 시작인 셈이다.
죽음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 자연스러움에 내가 속해 있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주변의 지인들 또한 모리의 죽음에 대해 준비되어 있어 모리는 평화스럽게 죽을 수가 있었다.
“사고”로 인해 갑작스럽게 삶을 마감한 사람들을 돌아보자. 죽은 자는 누워 있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혼란스럽다. 준비되지 않은 죽음은 혼돈이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에게도 가족 또는 지인의 죽음이 주는 삶에서의 극복 과정이 준비된 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오는 강도랄까 스트레스도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본다.
삶을 마감하는 시기는 인간 누구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반드시 시작과 마침이 있는 또한 사실이며 그렇기에 삶이 아름다운 것이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아름답게 준비하고 떠난다면 축복 일 것이다.
죽음을 자연의 이치로 받아들이는 연습.. 가야 할 때가 언제인 가를 모르는 이들도 자신의 삶이 자연 속에 포함되어 마감이라는 단어를 즐겁게 기다리며 맞게 되기를.... 나 자신 또한 준비할 수 있는 죽음으로 평화롭게 잠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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