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자적

2018년 5월 28일 육신사를 가다

운동화 2018. 6. 16. 17:13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5시로 정해지면서 경성이가 육신사를 다녀오자고 했다.

오늘 가본 곳 중 가장 좋았던 곳이다.

월요일 화요일이 휴무일이라 사람들이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조용한 사당과 함께 있는 여러채의 한옥에는 사람들이 생활을 하고 있었다.

태고정의 퇴마루에 누워 한참을 있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그리고 내려다 보이는 한옥들을 보고 있자니 편안해 진다.

가지가 처진 베롱나무(백일홍나무)를 보면서 풍성했을 때..

늦여름 빨갛게 꽃이 폈을때를 상상해 보았다. 잘라진 가지에 앙상해진 나무가 조금은 안쓰러웠다.

구석구석 돌아보는 내가 신기한 듯 은균이는 말을 건다.

한옥 마루 앞 짙은 주황색 꽃을 피운 키 작은 석류나무에서도 가을에 달릴 석류를 상상해 본다.

 육신사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묘리에 있다.

 묘리... 동네이름이 묘하다. ^^

묘한 기분을 가득 안고 돌아섰다.


*육신사는 삼촌에게 왕권을 빼앗긴 어린 왕 ‘단종’의 복위를 꾀하려다 숨진 사육신으로 일컫는 조선 세조 때의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 등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취금헌 박팽년(醉琴軒 朴彭年) 선생만을 그 후손들이 모셔 제사를 지냈으나 선생의 현손(玄孫)인 박계창이 선생의 기일에 여섯 어른이 사당 문 밖에서 서성거리는 꿈을 꾼 후 나머지 5위의 향사도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 뒤 하빈사(河濱祠)를 지어 제사를 지내다가, 숙종 20년(1694년) 낙빈(洛濱)이란 현액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고종 3년(1866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페령으로 낙빈사가 서원(書院)과 함께 철거되었으며, 1924년 낙빈서원이 재건되면서 위패를 다시 봉안하게 되었다. 이후 1974년부터 1975년 사이에 ‘충효 위인 유적정화사업’에 의해 현재의 위치에 육신사로 이름을 붙여 사당을 재건하였고, 2003년부터 2011년에 걸쳐 충절문을 세우고 전통가옥을 복원하였다.
사우건물인 숭정사에는 육신과 더불어 박팽년의 부친인 중림(仲林, ?~1456년)의 위패도 함께 봉안되어 있으며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에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어 웅장한 느낌을 준다. 경내에는 이외에도 정면 5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인 숭절당, 태고정(보물 제554호), 외삼문, 내삼문, 홍살문, 삼층각 등이 있고 사당 앞에는 사육신의 행적을 기록한 육각비(1979년 건립)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