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다..
집에 오는 버스 속에서 눈물만 흐른다.....
그냥 운다..........
집에 와서 집을 챙겨서 대구로 간다.....
빈소에 가니 동생만 있고 엄마가 안보인다.
한참을 영정 앞에서 울었다.
엄마를 보고 또 울었다....
아버지라고 불러드리지 못했다.
아빠아빠라고만 불렀는데....
전화를 해도 엄마를 바로 바꿔주시고....
아버지 핸드폰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구에 전화할 일이 있으면
엄마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었다.
대구에 가면 소파에 앉으셔서 손자 손녀들이 아웅다웅 노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모습이
떠나질 않는다..
참 열심히 사셨다..
너무도 아무것도 없는집 장남으로 동생들 챙기시고
동생들이 마무리 되니 우리가 커 있다고 하셨다..
동생이 대학갈때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쓰러지신날 하필 그토록 바라던 교감 승진 발령을 받으셨다.
승진된 학교로 가실거라고 병원도 안가시고 버티시다가
오빠가 저녁에야 겨우 병원에 모시고 갔다.
그렇게 병이나신 몸으로 18년을 사셨다.
상주로 문상객들을 맞는다.
아버지가 아시는 분들이 오실때마다 눈물이 난다..
입관식때 아버지 모습은 참 편안한 표정이었다.
2~3시간 동안 호흡이 안되서 고생하셨다는데 표정이 편안해 보였다.
입관식 마지막에 아버지를 뵈러 가는데 너무 차갑고 딱딱한 아버지를 만지지 못했다.
온기가 있는 아버지 손을 제대로 잡아본 기억이 얼마되지 않는다.
언젠가 마루 찬장에서 아버지 대학교때 일기장을 발견하고 읽은적이 있다.
서울에서 겪는 낯선생활들이 고스란히 적혀 있는 일기장을 보면서 내가 생각한 아버지보다
인간적인 아버지의 모습에 한참을 두고 보았었다.
집에와서 아버지의 일기장을 찾았다. 여기저기 다 뒤져도 없다. 엄마가 이사올때 버리신것 같다고 하신다.
복지관을 그만두고 악세사리를 만들어 판다고 하자 보자고 하셔서 몇개를 대구에 두고 왔는데
그것을 핸드폰에 꼭 달고 계셨다.
냉장고를 보니 토마토가 가득하다.
토마토를 보니 또 눈물이 난다.. 엄마가 토마토를 보고 울 것 같아서 서울올때 다 가지고 와버렸다.
오빠에게 참 고맙다..
오빠는 아버지의 자랑이다.
아버지는 오빠가 의사가 된것이 자랑스러웠고 현수가 할아버지를 좋아하는것을 흐믓해 하셨다.
화장을 마치자 마음이 편안해 졌다.
만불사에 아버지를 안치하는데 마음이 평온하다..
정말로 가셔다. 좋은데로 가셔다..
홀로 남은 엄마가 마음에 걸린다. 새벽에도 일어나서 울던데......
아버지가 젤로 좋은집을 사셔다고 자랑하시던 집에서 그냥 사신단다..
아버지 고생으로 나는 어려움을 모르고 자랐다.
지금도 내가 좋은 일을 하고 내가 좋은 것이 우선이다.
영호씨랑 결혼하겠다고 집에 있을때 그사람 한번 보자고 하셨을때가 생생하다.
엄마는 안된다고 난리고 딸도 요지부동이고 하지만 사람을 믿으셨던 탓에 정성스럽게 영호씨를 맞아주셨다..
삶과 삶이 이어지는데 부모가 빠질수는 없다.
서울로 올라오는데 온몸이 아프다. 뼈 마디마디가 아프다..
아프고 춥다..저녁까지 이상하게 몸에 기운이 빠지고 아프다..
그리고 비가 온다..아픈게 차라리 고맙다....
내일이면 일상을 돌아간다.
엄마가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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